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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9 호 [교수칼럼] 쓸데없고 시시한 이야기가 그리운 오늘

  • 작성일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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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867
이해람

김은경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낭만적이라는 표현은 때로는 터무니없이 현실을 모르는 이에게 팔꿈치로 옆구리를 슬쩍 치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낭만이 그리운 때도 없다. 날마다 정치면 기사는 피로감을 더해주고 우리는 새로운 날의 새로운 소식을 기다려본다. 속절없이.


오늘 나의 메이트 포털은 ‘자디그 앤 볼테르(Zadig & Voltaire)’가 84% 세일을 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큰 폭의 세일이지만 여전히 그 숫자에서 한 자리를 빼도 선뜻 구매의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금전적 부담이 아니라 취향 탓이라 해두자. 이 브랜드명을 알게 된 경위는 이렇다. 원래 프랑스의 한 장관이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디그 드 볼테르(Zadig de Voltaire)’라는 말 대신에 ‘자디그 에 볼테르(Zadig et Voltaire)’라 답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한 이야기를 들어서이다. 말인즉 ‘볼테르’라는 작가가 ‘자디그’를 써서 ‘볼테르의 자디그’라 해야 했는데 유명 브랜드명이 장관의 입에서 먼저 나와 버린 것이다. 철학서의 위엄과 함께 자신의 위상을 뽐내야 하는 그 시점에서 패션 브랜드명을 쏙 내뱉고 말았으니 입방아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이 이야기가 얼마나 고소한 안줏거리가 되었을까. 아, 그리고 말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어찌 놓치겠는가. 그 자리에서 폭소를 터트리는 대신 이 장면을 돌려보고 두고두고 숨 고르며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권위자의 어이없는 실수는 바다의 물결처럼 반짝이는 미소를 안겨준다. 기대가치를 뒤엎는 뜻밖의 전복은 낭만적 아이러니의 대표적 사례이다. 진지함이 과도할 때 바늘귀만한 무지의 구멍은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고 많은 이들에게 무장해제와 더불어 끄윽끄윽 웃음보따리를 선물한다.


고전 작품과 연관된 위정자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다. 17세기에 출판된 『클레브 공작부인』은 당시로는 앞서간 심리소설이다. 2006년에 내무부 장관이었던 사르코지는 이렇게 오래된 연애소설이 국가고시 시험문제에 출제되는 게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언급을 했다. 심지어 출제자가 멍청하거나 사디스트 기질이 있어 그랬을 것이라는 둥, 노동자층에겐 수용불가라는 둥, 작품 폄하에 차별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후 사르코지가 2009년에 또 한 번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그의 과거 발언이 환기되었고, 이에 대한 대중의 반발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그즈음 그의 국가정책도 발언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프랑스 국민이 너도나도 反사르코지의 아이콘이 된 이 책을 사서 읽는 바람에 한때 서점가에선 이 책의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책은 출간된 지 330여 년 만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정말 소소한 일에도 가히 혁명적인 사람들이다. 그쪽 나라도 정치인들의 부패와 비리에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가뭄에 비 내리듯 입가에 미소를 떠오르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밝은 회색과 진한 회색 사이의 정치 채도 가운데 간간이 숨을 트이게 해준다.


싸움을 하되 싸움이 끝난 뒤 흙탕물이 튄 서로의 옷을 털어주는 매너의 장면을 언젠가는 보았으면 좋겠다. 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이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이상적 차원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에선 흉물스럽고 일그러진 수성(獸性)에서 숭고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위고의 극작법이 잘 드러나 있다. 잘생긴 풰뷔스를 나의 태양이라고 부르는 에스메랄다의 눈엔 콰지모도의 순전함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는 세상의 이치라 패스한다 치자. 그렇지만, 그래도 위고는 콰지모도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낭만주의의 이 극적인 갭은 감성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게 한다. 오늘 나는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을 또렷이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를. “여보세요! 낭만은 픽션에서나 찾으세요!” 누가 곁에서 옆구리를 쿡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