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메뉴
닫기
검색
 

여론

제 679 호 [기자석] “지성을 박탈당한 대학” 교수는 무지, 학생은 무감

  • 작성일 2019-10-07
  • 좋아요 Like 0
  • 조회수 4399
이해람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가 대학 강단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로 폄훼하고 학생들이 성희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이 발언은 사회학과 전공 수업인 ‘발전사회학’ 강좌에서 나왔다. 사회학 권위자 중 한 명이 역설적으로 사회학의 본질을 오도한 것이다.


K대학교 모 학생이 조국 딸 부정입학 논란과 관련하여 교수들이 나눈 이야기를 증언했다. 교수들은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주제를 바꿨다. 그 후 꺼낸 이야기는 “지인의 아들이 K대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공 교수이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학생은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자신은 “3년간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쉽게 이른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니...”라고 한탄했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회가 ‘지성인’으로 여기는 교수 역시 엘리트주의와 계급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회학과, 강좌는 ‘발전사회학’임에도 교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젠더문제에 대해 무지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또한 K 대학 교수들이 입시부정과 관련해 대학생들 앞에서 꺼낸 말들을 듣고 ‘경악’할 수밖에 없다.


‘일부’ 교수들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부정은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며, 이어서 나온 이야기 역시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물론 그들은 누구보다도 유능하고 학문에 정통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지 교수라는 계급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대학은 지성을 빼앗겼다. 계급성을 이해하고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는 지성인은 온 데 간 데 없고, 교수이자 권위자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약자를 조롱하고, 권력을 대물림하는 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대학은 교수가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과 의사소통하도록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게 ‘영업사원’으로 만들었다. 돈이 되는 정부와 기업의 프로젝트를 따와야만 교수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만든 것이다. 대학이 지성을 빼앗기자, 교수 역시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여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학내에서 학생들은 ‘정치적인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한다. 파산당한 명지대 총학생회, 조국 사퇴 집회를 주동한 서울대와 고려대 총학생회 모두 ‘탈정치’를 외쳤다. 정치적인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오해하고 두려워한다. 청년들이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계급성과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학생들은 서로를 공감, 이해하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한다. 사회로부터 목 죄인 탓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주체로서 청년이 멸종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부정입학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발하면서 이원 캠퍼스나 평생교육원 학생들을 무시하는 학내 분위기는 결코 고학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사회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 없이 학벌주의만을 고수하겠다는 태도는 앞서 언급한 교수의 모습과 닮아있다.


지성을 잃고 정치가 사라진 대학은 ‘대학’으로서 기능을 잃는다. 우리 사회 안에서 누구보다도 유식한 교수는 무지하고, 학생은 사색 없이 무감하다. 학계의 권위자여도, 이른바 ‘최상위권 대학’이어도 그 사람의 지성을 판단할 때 사회적 위치와 경험, 공감능력과 연대의식을 배제할 수 없다.


대학이 지성의 전당으로서 기능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위자와 엘리트의 차별의식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무지하고 무감한, 무용의 대학을 우리의 것으로 되찾는 길이다.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