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메뉴
닫기
검색
 

여론

제 680 호 [기자석] 노동자 없는 ‘AI 강국’ 가능할까

  • 작성일 2019-11-11
  • 좋아요 Like 1
  • 조회수 3623
이해람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인공지능 콘퍼런스 ‘데뷰(DEVIEW) 2019’에서 “IT 강국 넘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혈압 증세로 쓰러진 독거노인이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살려달라고 외쳐 이를 119로 연결한 사례를 들면서 인공지능이 고령화 사회의 국민 건강, 노인 복지, 여성 안전, 범죄 예방 등의 문제를 해결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은 인류의 동반자”라며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인공지능은 독거노인을 구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편의’를 위해 인공지능이 노동자를 대체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편의는 노동자의 편의가 아닌 자본가의 편의이다.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갈취하는 것이 어떻게 편의가 될 수 있나. 임금지출을 줄이고 사회적 책임에서 도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주장한 톨게이트 노동자들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없어지는 직업인 것이 보이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는 AI 예찬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예언했다. 기업의 효율적 기업 운영, 그리고 이에 무비판적인 정부는 노동자들을 위협에 몰아넣는다. 기업과 정부는 독거노인을 살렸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로 노동문제 전반을 숨기고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은 11월 1일자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사람 없는 혁명’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자백했다. 그는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뺏는 거다”라며 주 52시간 근로제를 비판했다. 이어서 자신이 과거 주 100시간씩 일하며 1세대 벤처기업을 일으켰고 현재 1조원 대 자산가가 되었다는 성공신화를 늘어놓았다. 그는 4차 산업 시대에서는 생산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산수단이 없어도 자산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4차 산업 시대에는 노동자는 없다. 그렇다면 장병규 회사의 직원들은 노동자가 아니고 고용주는 자본가가 아니란 말인가? 지식으로 ‘생산’한 상품을 대량 제작, 유통하는 것은 ‘생산수단’이 아니면 무엇인가?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조차도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혁명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깊이 고민해야할 시점이 왔다.


그럼에도 4차산업혁명은 정재계는 물론 고등교육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손쉽게 인력을 공급받기 위해 대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학 당국과 대학생은 살아남기 위해 그 구조 안으로 편입될 뿐이다. 4차산업혁명을 가르치는 교육에서는 놀랍게도 노동자가 없다. 모두가 지식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수단’이고, 경영가이자 자본가이다. 교육에서는 기술과 경영만 강조될 뿐 그 안에 사람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거세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면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발간한 ‘일의 미래 글로벌 위원회 보고서>’는 “노동자의 기본권, 적정한 생활 임금 보장, 일하는 시간의 제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환경, 전 생애에 걸친 사회보장, 숙련 향상을 위한 평생 교육, 좋은 일자리”를 증진할 수 있도록 “기술 변화를 관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술 발달로 소수 자본가 계급이 부를 쉽게 독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기술이 사회적 평등에 기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과 시장이 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를 이끌어야 하고 교육은 고민하고 비판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AI 강국’이 된다면 대다수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생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다면 4차산업혁명에 최적화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낙오자가 될 뿐이다. 정부는 인공지능을 인류의 동반자로 만들고 싶다면,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