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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82 호 [뮤지컬로 세상 보기] 술래가 되어

  • 작성일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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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632
윤소영

술래가 되어


  항상 술래였던 한 소년이 있다. 가위 바위 보를 못해서, 달리기가 느려서, 높은 곳이 무서워서. 시간이 흘러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그는 술래가 되어 친구들의 흔적을 찾는다. 단풍나무 그늘 아래, 산등성이 돌탑 뒤에, 휘파람이 들리는 그곳에서. 해가 떨어져 밤이 깊어가니 얼른 집에 가자고, 애타게 친구들을 찾는다. 뮤지컬 ‘귀환’은 이 노인, 승호가 술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간다.

  승호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숙제도 미루고 시험도 걱정하는 평범한 소년시절. 그들은 모두 꿈을 꾸며 스스로 알을 깨고 훨훨 날아오를 그 날을 기대했다. ‘귀환’은 승호와 친구들의 소년시절이 누구에게나 존재했던 평범한 일상이었음을 강조한다. 우리 모두 매일 지루함을 느끼고 때로는 하찮게 여기는 일상들. 그렇지만 동시에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역설한다. 그 평범한 소년시절을, 당연한 일상을 전쟁이 저물게 했으므로. 

  함께 하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고 애써 불안을 억누르던 그들이었다. 눈을 감고 지나가기를 빌고, 담담한 척 스스로도 속여 봤지만 전쟁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국 전쟁은 소년들의 꿈을, 우정을, 목숨을 앗아갔다. 마지막까지 혼자 살아남은 승호는 그들에게 약속했다. 단풍나무 그늘 아래, 산등성이 돌탑 아래, 휘파람이 들리는 이곳으로 꼭 찾으러 오겠다고. 백 년이 지나도 반드시. 

  결국 ‘귀환’이 승호와 친구들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었다. 자칫 반감이 들 수도 있는 소재와 주제를 진정성 있게 풀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의 과정과 결과보다도 ‘사람’의 심리를 노래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고, 이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결국 승호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승호의 이야기는 결코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기다리며 울고 있고, 누군가는 차가운 흙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부디 승호의 마음이 잘 전달됐기를 바라며 ‘귀환’의 주제인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 발굴 사업’에도 작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윤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