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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96 호 [책으로 세상보기] 사랑의 형태를 찾아서 -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 작성일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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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895
김지현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지음 | 난다 출판 | 2019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을까? 나를 돌아보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당신의 발걸음에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무모하리만큼 맹목적인 사랑을,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할 일이 있을까? 


  혹은 답이 돌아오지 않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도 모르는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버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이 사랑에 걸어도 좋을까? 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은 바로 이 ‘사랑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지구에서 자신들의 사랑이 단 하나뿐이기를 바라는 연인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이 세상 모든 것들의 가치를 사랑하는 친환경 디자이너 ‘한아’와 그런 한아를 사랑하는 만큼 여행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경민’. 사랑을 나눌 줄 아는 한아를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2만 광년을 날아온 ‘또 다른 경민’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우주로 떠난 싱어송라이터 ‘아폴로’ 그리고 그의 팬클럽 회장 ‘주영’까지.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모하리만큼 자신이 사랑하는 것만을 바라본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 그래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현실의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들에 경악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소 비현실적인 그들의 사랑에 ‘이게 뭐야. 너무 소설 속 이야기 같잖아.’ 같은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로 하여금 ‘사랑의 형태’를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도 바로 그 비현실적인 사랑이다. 이들의 사랑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사랑할 수 있는지, 그 사랑의 크기와 형태는 어떤지, 혹은 그 사랑의 끝은 어디일지.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결국 ‘사랑에는 정답이 없구나’라는 탄식으로 귀결되고 만다.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무궁무진하다. 만약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나처럼 그들의 사랑을 비현실적이라고 느낀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우리가 이미 사회가 ‘사랑’이라고 규정해버린 형태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요즘,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으며 오랜만에 ‘사랑’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단언컨대 그 고민의 끝에는,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 최소한 하나는 생길 것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내 연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 꿈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루하고 지쳐버린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윤소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