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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96 호 [영화로 세상읽기-독자투고] 영혼은 꿈꾸는 만큼의 무게

  • 작성일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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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515
김지현

영화 <가타카(Gattaca)>


  좋아하는 영화 몇 편을 꼽아보라고 하면 꼭 들어가는 것이 sf 영화다. sf 영화라는 취향 가운데서도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바로 가타카.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처음 봤는데 그 후로도 변함없이 좋아해 온 터라 자주 생각하지는 않아도 간혹 기억날 때면 꼭 챙겨 보곤 한다. sf, 우주, 좋아하는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는데 가타카는 여기에 더해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나 인간의 잠재력 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신체적 조건이 운명을 설계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운명의 궤도 바깥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다고 본다. 즉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적격자, 그렇지 못한 비적격자, 이들의 조건에 따라 각자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 빈센트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심장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99%나 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역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확률이 1%라도 존재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확실히 0%와 1%는 다르다. 유(有)와 무(無)는 천지 차이인 것처럼. 그래서 그는 신분을 위조하여 다시 도전한다. 중간에 들키면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알지만 어차피 더 잃을 것은 없고, 실패하면 그대로지만 성공한다면 그토록 바란 꿈을 이루는 것이기에. 결국 그는 성공한다. 모두를 속여 낸다. 가타카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의 보장된 유전 기록을 선택했지만 이내 그의 훈련 기록, 항로 결정 능력 등을 통해 그를 일등항법사로 인정하게 된다.


  보면서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타고난 유전적 조건이 축복이고 족쇄라고 하지만 사실 앞날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빈센트는 그 심장을 가지고도 모든 훈련을 잘 견뎌내지 않았나. 사람에게 한계를 정해주는 일은 전지전능해서 앞날을 모두 내다볼 수 있는 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에게는 잠재력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전자, 몸의 영역을 넘어서는 ‘정신’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신이 바로 우리를 더 강한 존재로 만드는 힘이다. 정신은 유전자만으로 예측할 수 없다. 또 그 정신보다 더 큰 수레바퀴 아래에서 굴러가는 게 삶이다. 그래서 빈센트는 도전했다. 어쩌면 내 심장이 버텨 주지 않을까,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소망을 품고서.


  바로 이런 게 가타카를 좋아하는 이유다. 알면서도 도전하는 것, 최선을 다해 그어진 선 바깥으로 나가려 시도하는 것, 그리고 끈질긴 열정이 어떻게 사람에게 모든 걸 견디는 힘을 부여하며 또 나아갈 힘을 주는지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풍기는 진지하고 묘한 기운이 있다. 그건 사람을 고양되게 한다. 마음이 풀어진다고 느낄 때마다 이런 영화를 보는 이유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보이는 것 말고도 저 바깥 공간에 존재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좋다. 또는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광대한 우주라는 곳에서 자신의 왜소함을 깨닫고도 아무튼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는 일이 즐겁다. 이들에게서는 어떤 숭고함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빛이 난다. 어떤 경로로든 오는 시련을 견디며 인간성을 단련해 낸 사람들은 간절한 소망을 위해 고통을 감수할 줄 안다.


  올해 여름에도 마치 연례행사처럼 이것을 보았으니 이제는 곱씹어 보면서 내 삶에 대한 생각을 좀 해보려 한다. 매번 이런 사람들의 삶의 자세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나도 이런 자세를 가질 수 있을지, 이런 생각들을. 그래서 오는 다음 학기는 조금 더 마음을 무겁게, 두둑하게 먹고서 살아낼 수 있기를.

 

 

국어교육과 임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