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메뉴
닫기
검색
 

학술·사회

제 677 호 한국인은 보글보글 끓다 마는 냄비 근성?

  • 작성일 2019-09-05
  • 좋아요 Like 1
  • 조회수 4705
이해람

역사 속의 한일관계


일제는 1910년 8월 국권 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 강점 아래의 식민통치를 하며 한국의 물자와 자원을 약탈해 갔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실행된 후 1944년에 국가총동원법을 조선인에게 확대 적용하여 전쟁을 위한 노동자로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다. 동원된 이들은 사할린섬 등 일본의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당하거나 군속으로 차출되어 일본의 군사 기지 건설이나 철도 공사에 동원되었다. 


이중 상당수가 임금 없이 과중한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전쟁 중 또는 전후 전범으로 희생되었다. 또한, 전투력 약화를 보충하기 위해 조선인 학생을 대상으로 징병을 시행하여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이 국제 사회에 복귀하면서, 1951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시 국교를 맺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한국은 일본에 사과와 배상할 것을 요구한 협상을 제시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고, 양국의 협상이 본격화된 것은 박정희 정부 때였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61년에 일본을 방문해 일본 총리와 한일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고, 한국은 청구권 3억 달러와 경제 차관 3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식민 지배의 피해에 대한 모든 배상을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회담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일 회담 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특히 1964년 6월 3일에 ‘굴욕적 한일 회담 반대’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를 진압했다. 1965년 한일 협정을 마무리 지었다.


최근 일본 아베 총리는 강제 노역 피해자 배상문제를 언급하며 ‘한국은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우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며 반도체 분야 핵심 품목 3개의 한국 수출에 대한 규제와 자국의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 노역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경제 보복 조치였다. 화이트 리스트, 즉 백색 국가는 일본이 자국의 안전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전자 부품 등을 타 국가에 수출할 때 허가신청을 면제하는 국가를 뜻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34개국과 군사정보 보호 협정(지소미아)을 맺고 있는데, 34개국 중 2016년 11월 일본과 지소미아 체결을 하였다. 지소미아(GSOMIA)란, 군사정보 보호 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의 약자이다. 협정을 맺은 국가 간에 군사 기밀을 공유할 수 있고 국가 간 정보 제공 방법, 정보의 보호와 이용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한일 간의 협정에서는 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향 등 대북 군사정보를 직접 공유해 왔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탈북자나 북·중 접경지역의 인적 네트워크(휴민트) 등을 통해 수집한 대북정보를 일본에 제공하고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5기, 이지스함 6척 등 보유 탐지자산을 통해 얻은 영상정보 등을 한국에 전달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과 지소미아 체결 이후에 정보 교환이 지난 2일까지 총 29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29건 모두 우리나라가 일본에 제공한 정보이며 2016년 12월 일본은 한국이 요청한 정보에 ‘자국 보유 탐지자산을 통한 정보이므로 제공하지 않겠다.’라며 거절하였다. 우리 정부 측은 일본과의 지소미아 협정을 통해 얻은 정보도 없을뿐더러 국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8월 말 지소미아 종료를 검토했으며 지난 22일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일본은 28일 한국을 전략 물자 수출 우대 국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시행하는 것에 더해 추가적인 보복 조치인 비 전략 물자 한국 수출에 대한 ‘캐치올 규제’, 즉 모든 물자를 대상으로 한 수출규제 시행했다. 이에 정부는 이중 이미 개별허가가 적용되거나 국내 미사용·일본 미생산으로 관련이 적은 품목, 소량 사용 또는 대체 수입으로 배제 영향이 크지 않은 품목을 뺀 159개 품목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한국도 일본을 수출 우대 국에서 제외하고 그동안 미뤄뒀던 독도 방어 훈련을 재개하는 등의 다양한 맞대응 방안이 나왔다.

국민이 발 벗고 나선 일본 불매운동, 과거와 현재의 차이


현재 우리나라는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본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를 경제적 보복 조치로 우회하였다며 우리나라 국민이 더욱 정교하게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조건적으로 일본 제품은 사면 안 된다는 차원을 넘어 상징적인 기업, 브랜드, 제품을 불매운동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대일항쟁 시대에 강제 동원 등으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생명, 신체, 재산 등 피해를 준 전범 기업과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을 행했던 일본 기업, 그리고 유니클로와 같이 우리나라를 겨냥하여 무시하는 발언을 했던 브랜드가 속한다. 이번 불매운동은 소비자단체가 나서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진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본 불매운동은 이전에도 여러 번 실행됐으나 항상 실패로 끝이 났다. 국채보상운동이나 조선물산장려운동 등 과거의 불매운동 진행 당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이러한 불매운동은 일본에 타격을 주기에는 효과가 미미했다. 그리고 과거의 운동은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가 선동하여 이끌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국민의 활동 여부에 대한 증명이 어려웠으므로 국민의 참여 동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국민은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함을 참지 않고 방출한다. 이들은 하자 있는 제품을 거부하는 ‘소비자 운동’을 넘어 일본 기업의 가치관, 사회적 책임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스마트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참여자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 현재 국민 10명 중 6명 이상(64.4%)이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불매운동의 규모를 키워나갈 수 있던 계기는 소셜 미디어의 힘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플랫폼에 “#불매운동”과 같은 참여 인증을 통해 타인과 쉽고 빠르게 공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노 재팬’이란 사이트에서 일본 제품 품목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제품을 알려주고 또한 택배사나 마트 업체, 항공사에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각자의 위치에서 행동을 취하는 많은 국민의 동력이 있어 이번 불매운동은 장기적이고 활동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불매운동, 놀라운 효과 그리고 우려


대표적인 불매운동 대상이었던 유니클로의 경우 국내 주요 8개 카드사의 유니클로 매출액이 지난달 70.1%나 급감했으며, 유니클로 이마트 월계점은 지난 15일을 마지막으로 폐점을 결정했다. 무인양품과 ABC마트 역시 각각 매출이 58.7%, 19.1% 감소했다.


단순히 상품을 통한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일본 여행 자제’를 통한 불매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방일 관광객 2순위로, 작년에만 714만 명이 일본을 찾았다. 한국이 일본의 관광수입에 크게 한몫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를 역이용하여 일본여행 보이콧을 시작했다. 일본정부관광국이 지난 21일 발표한 방일 외국인 여행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에 일본에 방문한 한국인 여행자 수가 작년 동월과 비교해 7.6%나 줄었다.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불매 운동이 시작된 7월에는 수수료 등으로 인해 예약 상품을 취소하는 것이 어려워 예상했던 것보다 감소 폭이 적은 것이고, 8월에는 감소폭이 두 자릿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방일 한국인 여행자 수가 급감함에 따라 일본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들은 “한국인 관광객의 비중이 높았던 규슈나 오사카,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에 있는 관광업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라고 전했다.


불매운동과 관련하여 국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최근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76.2%가 ‘일본이 경제보복을 철회하지 않는 한 불매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고, 41.3%가 ‘경제보복을 철회해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제품 선택은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 작가 에반 게리온은 지난 8월 9일 개인 SNS에 소녀상에 대해 비하하고 한국인은 ‘냄비근성’을 가졌으므로 불매운동 또한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냄비 근성이란 어떤 일에 금방 흥분하다가도 금세 가라앉는 성질을 냄비가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모습에 비유한 말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불매운동은 극단적이거나 비이성적인 불매운동의 움직임이 크게 보이지 않으며 예전과 달리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냄비 근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리 짐작하여 불매운동에 대한 언행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방효주, 최아름, 한아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