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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2020호외-1 호 인권을 무시한 성착취·디지털 성범죄, n번방

  • 작성일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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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107
윤소영

‘n번방 사건’이란?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 내에서 이루어진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가해자들은 1번방·2번방·3번방 등 방에 번호를 붙여 여러 방을 운영했고, 이것을 ‘n번방’이라고 일컫는다. 텔레그램 내에는 n번방뿐만 아니라 그와 유사한 수많은 방이 존재했다. 방을 운영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성 착취 동영상을 그 방에 공유했고 그들이 피해자들을 유인한 방법은 다양했다. 트위터에서 일탈계(SNS상에서 자신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밝히지 않고, 자신의 신체를 노출한 사진·영상 등을 올리는 계정)를 운영하는 여성 청소년에게 접근해 해킹 링크를 보내거나 경찰로 위장해 신상정보를 얻어냈다. 알바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인 척 위장해 신상정보를 캐내기도 했다. 이들은 빼돌린 신상정보를 가지고 피해자들을 협박했고 성적인 사진과 영상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노예’라는 이름을 붙여 이들의 성 착취 영상 및 사진, 개인 신상정보 등을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했다. 이 사건이 공론화되자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n번방 사건’은 국민청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 n번방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약속한 청와대 (출처: 청와대 트위터)



디지털 성범죄와 솜방망이 처벌 논란

  지난달 16일 텔레그램 주요 방 중 하나인 ‘박사 방’의 운영자 조주빈(25)이 검거됐다. 검거 후 그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200만 명을 돌파했고, 지난달 24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근거해 그의 성명과 나이, 얼굴 사진이 공개됐다. ‘n번방’의 운영자 ‘갓갓’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이다. 조주빈에게 적용된 죄명은 ‘아동 청소년성보호법상 음란물 제작·배포’, ‘아동 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 총 14개이다. 적용된 죄명에 따르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 있었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한 편이었기에 그가 실제로 선고받을 형량에 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크웹(일반적인 검색엔진으로는 접속할 수 없고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웹)에서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오는 27일 출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손씨는 범죄인 인도 심사를 위해 다시 구속됐고, 법원의 송환 여부 결정과 법무부 장관의 인도 여부 결정을 통해 미국에 인도될 수 있다. 1999년부터 2016년까지 17년간 운영된 불법 촬영물 사이트 ‘소라넷’의 운영자 역시 고작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무척 관대한 편이다. 미국의 경우, 아동 음란물 제작은 징역 15~30년을 선고받을 수 있으며, 이를 상업적으로 유통한 경우에는 5~20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 실제로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회원이었던 미국인은 징역 97개월과 보호관찰 20년을 선고받았으며, 해당 사이트에서 영상을 다운로드했던 미국인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매우 관대하며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

  ‘n번방’은 2017년부터 운영되었으나 오랜 시간 공론화되지 못했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 등에서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주목받지 못했다. n번방의 최초 신고자이자 최초 취재자는 대학생 두 명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이었다. 이들은 2019년 7월 텔레그램을 통해 n번방의 존재를 알게 되어 직접 잠입 취재한 끝에 경찰과 언론에 수집한 자료를 제공하고, 9월에는 뉴스통신진흥회를 통해 이 문제를 보도했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11월 한겨례 신문이 언론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n번방’을 보도했으나 오히려 박사는 기자의 신상을 털어오는 사람은 특별한 방에 입장을 시켜준다며 공지했고, 실제로 박사방의 운영자가 기자의 신상을 털어 가족들까지도 협박했다. 결국 n번방 보도는 기자의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특별취재팀’이라는 바이라인으로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 1월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고, 몇몇 주요 언론에서도 n번방을 기사화하며 경찰 조사가 빠르게 이뤄졌다. 결국 3월에 이르러서야 박사가 검거되며 전 국민이 n번방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이후 언론의 보도 방향이 변질되어 본질이 흐려지고 박사 ‘조주빈’의 과거가 기사화되었다. 학교나 행적, 교우관계 등 그의 과거가 기사화되며 마치 불행한 과거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처럼 그려졌다. 더구나 조주빈이 자신을 ‘악마’라 칭하는 상황 속에서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바로잡기는커녕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됐고, 이를 멈추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었다. 이에 언론노조성평등위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보도와 구조 개선을 위한 보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n번방 보도 관련 긴급지침을 발표했다. “인터넷 트래픽을 위한 낚시성 기사 생산을 지양하고, 경쟁적 취재나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범행의 구체적 내용을 제목으로 달지 말자”,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특히 “가해자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남성 고유의 성적 충동’ 등의 표현으로 남성이 본능을 억제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어선 안 된다.”고 명시하며 성범죄를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한 예외 사건처럼 보이지 않도록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악마’와 같은 표현이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 존재로 타자화해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지침은 여성가족부의 ‘2018 성희롱 성폭력 보도 수첩’, ‘신문윤리실천요강’,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따른 것으로,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기기나 기술을 매개로 온·오프라인상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임을 강조하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개책, 피해자 보호와 지원 과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보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리 대학이 속한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에서도 “n번방사건에서 책임을 망각한 언론의 보도행태를 지탄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언론은 가해자 중심의 보도를 즉각 중단하고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성착취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모색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으로,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을 망각한 채 저널리즘 가치를 훼손하는 보도를 멈추고 진실과 본질을 추구하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라.”는 것이다.


▲ 언론의 보도 행태를 지탄한 서언회 성명문 (출처: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잘못된 성 인식,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

  n번방 용의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포토라인에 세워달라는 청원에 국민 청원 역사 상 가장 많은 인원인 270만 명이 동의하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n번방 해시태그 운동이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등 사이버 성범죄와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 미성년자가 너무나도 쉽게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몰카와 같은 불법 영상물의 촬영 및 불법 공유가 너무나 만연하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성범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n번방 사건은 규모가 크고 죄질이 나빠 논란이 크게 불거졌지만 그 이전에도 이와 같은 크고 작은 성범죄 사건들이 이어져 왔다. 그중에서는 기사화는커녕 그냥 묻혀 가해자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많고, 공론화로 인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나 금세 잊혀버린 경우도 많다. 일례로 2019년 공론화되었던 버닝썬 사건의 경우 클럽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나 연예계 주요 인사들이 연루된 성접대, 불법 영상물의 불법 공유 등 사안이 심각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사람들에게 버닝썬은 이미 잊혔고 가해자들은 적은 형량을 받았음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목소리가 모여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 개정은 물론이고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전에 관심이 그쳐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줄어든다면, 당연히 세상은 변화할 수 없다. 


  잘못된 성인식을 바로잡는 것 또한 중요하다. 특히 미디어에서 여성과 여성의 이미지를 잘못된 방향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사람들이 자각도 없이 잘못된 성 인식을 갖는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프로파일러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그동안 범죄영화를 보면서 여성 신체의 시각화 등 쾌락적인 보여주기 방식에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범죄 영화 대부분이 가해자, 범죄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현한다. 영화 속 피해자들은 여성이 많은데 다들 말없이 죽어 있는 식으로만 나온다. 그들에게는 목소리가 없고,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여성을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힘없는 존재로만 비추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실제로 여성을 범죄의 표적으로 삼는 경향이 강해지는 동시에 여성들 또한 스스로를 힘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에서 시청자 유치를 위해 앞 다투어 자극적인 내용을 방송에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미디어 플랫폼이나 sns는 어린 연령층의 사용이 많아 자칫하면 아동·청소년에게 잘못된 성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여성은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아직까지도 성범죄 피해자인 많은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명백히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그러게 짧게 입고 다니지 말았어야지.’, ‘밤늦게 다니지 말았어야지.’와 같은 말들 모두 해당한다. 이번 n번방 사건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그러게 일탈계를 왜 운영해?’와 같은 2차 가해가 이어졌다. 이러한 인식은 가정폭력처벌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수는 “가정폭력처벌법의 기본 목적은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생명권 보호가 아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는 여전히 가정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가부장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지조를 지키지 못했다,’,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처럼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고 마치 그것이 그들의 잘못인 것처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피해자는 성범죄를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범죄에 가담한 적은 없어도 오랫동안 성범죄를 야기하는 잘못된 성 인식을 묵인하고 심지어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까지도 자행해왔다. 성범죄에 대한 우리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성 착취로 고통 받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이제는 사회가 변화해야 할 때이다.



방효주·윤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