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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제 679 호 이의신청, 족보, 녹음... A+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 작성일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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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856
이해람

“투명하게 공개하라”
학점에 목매는 학생들의 요구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취업의 지표가 될 수 있는 학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는 학기말 성적 공개 이후 오류가 발생해 학점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신의 성적을 납득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이의신청 기간을 둔다. 해당 기간에 학생들은 자신의 학점 세부 점수를 묻는다. 세부 점수를 요청하는 학생이 많아짐에 따라 최근 동덕여대, 서울여대, 건국대 등 대학들이 성적 공개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학점 등급만 공개하는 것이 아닌 세부 점수를 공개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 세부 점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당국은 “아직 많은 학교들이 공개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며 자세한 점수는 성적 이의신청 및 정정기간에 문의하면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정정기간에 주말이 포함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게 느껴지며 해당 과목 교수와 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당국은 이의신청 기간이 짧다는 지적에 대해 3일에서 4일로 연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어지는 학사일정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연장은 힘들 것”이라며 “이의신청의 70% 이상은 첫째 날인 금요일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의신청 기간 연장이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수강생 3명이면 A 1명, B 1명, C 1명…“상대평가의 절대화”


대부분의 대학이 절대평가를 시행한 당시 기업은 대졸 취준생에 대한 효율적 평가를 위해 ‘학점 인플레이션’에 불만을 표하며 상대평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오찬호 연구원은 절대평가가 ‘학점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학점 인플레이션은 기업이 요구하는 학점이 높아지고 학점으로 학생의 대학생활, 지식역량 전반을 평가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학생들은 높은 학점을 얻기 위해 ‘꿀강’을 찾아듣는다. 기업의 효율적 인재선발과 좁아지는 취업문으로 발생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더욱 엄정한 상대평가를 요구했다. 이 때문에 수강생이 3명이면 모두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험을 잘 보더라도 A 1명, B 1명, C 1명으로 배정해야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교육부 대학평가지표 역시 ‘학사관리의 엄정성’을 포함하고 있다. ‘수업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가?’, ‘학생에 대한 평가 및 성적 부여는 엄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항목은 학생들의 성적이 얼마나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때문에 사실상 교육부가 상대평가 도입을 강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상대평가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자 우리 대학은 이번 학기부터 상대평가를 줄이는 방향으로 학업성적 평가방법을 개선하였다. 10~20명 미만 강의를 A비율이 40%인 상대평가 2유형, 10명 미만 수강 강의를 절대평가로 변경했다.

상대평가, 효율이 낳은 괴물…학생은 “전체 성적 공개하라”


상대평가가 “경쟁심과 긴장감을 유발하여 학습효과를 증진시킨다.”는 주장은 교육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상대평가가 “협력적 관계를 방해하는 제로섬게임”이라고 말했고, 사회학자 엄기호는 “징벌과 그로 인한 모욕감을 일상화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기업과 교육부는 대학을 상대평가로 유인했고 대학 역시 상대평가를 고집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더욱 학점에 예민해진다. 수강신청부터 이미 성적경쟁은 시작되고 시험이 끝난 후 정정기간 역시 경쟁이 끝나지 않는다. 성적에 목맨 학생들은 교수에게 “왜 내가 이 성적이냐”고 묻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교강사는 이의제기가 어려운 단답형, 객관식, OX 문제를 선호한다. 어느 대학 사회학 시험에는 뒤르켐 철학을 묻는 문제 대신 철자(David Emile Durkheim)를 적어내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교수와 학생 모두 생각과 논리 대신 쉽고 명확하게 등수를 매기고 학점을 챙길 수 있는 시험과 평가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홍세화 교수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 사물과 현상에 관해 묻지 않는다. 객관적 사실에 관해 암기를 요구할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소개된 팁은 ‘강의시간 교수의 사소한 농담까지 받아 적고 외우는 것’이었다. 사유와 비판 대신 암기만이 높은 학점을 따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 것이다. 따라서 사유를 요구하는 수업은 낮은 별점과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평가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과 교수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학생이 더 높은 학점을 받는다는 이야기까지 떠돈다.


나아가 학교 당국에서 교수가 다르고 여러 분반으로 나뉘어 있는 강의의 내용을 통일시키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이는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의 성적배정 형평성을 지키고, 재수강 학생들이 예전과 다른 강의 내용에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학문이란 것이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강의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임에도 효율적 평가를 위해 하나로 통일시켜야만 한다.


오찬호는 『진격에 대학교』라는 저서에서 2045년 청와대 회의실을 상상하며 대학교육이 자살이론의 내용 대신 뒤르켐의 철자를 묻는다면 자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공감할 공직자는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학점에 집착하는 기업-대학-교수-학생 간 구조를 깨지 못한다면, 이것이 망상에 불과하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과 정부는 고등교육의 역할에 대해 심도 깊은 성찰과 논의를 하여 대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해람 , 허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