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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80 호 [사설] 헤아림의 결핍, 헤아림의 미덕

  • 작성일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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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663
이해람

사회가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할수록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합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만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가치의 충돌로 인해 사람들의 감정이 격앙된 탓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세상은 더 넓어졌으나 시야는 더 좁아진 느낌이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명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가치의 실종 시대에 모두가 극도로 피로한 상태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은데 가슴이 답답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이들이 나갈 길을 생각하면, 마치 안개라도 자욱하게 낀 것처럼 시야가 흐려져서 미안하다. 이 안개를 걷어낼 시원한 바람은 언제쯤 불어올까. 사막에 한 두 방울 물이 모여 오아시스를 이루고 수많은 생명을 키워내듯 우리가 또 다시 꿈을 품을 방도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꿰매져야 한다. 우리는 왜 이리도 분열된 지경에 처하게 됐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헤아림의 결핍’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가치의 실종 시대에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사람도 있고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누구도 나무만 본 적이 없고, 누구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고 말한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무리에 대해 가차 없이 공격을 해댄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편 무리에 서있는데 그 많은 이들을 무슨 권리로 무시할 수 있을까, 그들이 왜 반대를 하는지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일까. 타인에 대한 헤아림의 결핍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외면하는 일이 아닌가.


진심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말이 상대를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상대를 몰아세우기에 급급하다. 누군가는 촛불을 들었고, 또 누군가는 태극기를 들었지만 국민을 앞세워 또 다른 국민을 모욕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정치인들이 너무 쉽게 쓴다. 반대 의견을 가진 다수의 국민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헤아림의 결핍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상대를 무시하면서 자신만 옳다고 말하는 불통의 시대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이성은 마비되고 마침내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말 것이다. 말할 자유를 이런 식으로 누려서야 되겠는가? 소음에 가까운 말을 여기저기 퍼뜨리며 그러한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상황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알리는 데만 열중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며 따르는 사람들만 생각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욕한다. 진영의 이분법과 선악의 이분법이 팽배해진 이 시대에 각자 자기 말만 늘어놓으면서 국민을 거론하는 이 무책임함과 오만함을 대체 어찌 해야 할까. 국민을 앞세우기 전에 지금의 분열된 상황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이성적으로 논리를 따져 무엇이 정의로운 일인지 모색하고 숙의하는 시간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꿈을 이루며 희망을 담보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헤아림의 미덕’이 필요하다. 반성도 없고 헤아림도 없는 현실 앞에서 청춘들에게 한없이 부끄럽지만, 우리의 청춘은 헤아림의 결핍에 빠지지 말고 인간이기에 끈을 놓으면 안 될 존엄성의 가치를 중시하기 바란다. 극복해야 할 일과 이루어야 할 일이 있을 때 상대를 누르며 이기겠다는 전략 말고, 상대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며 토론을 끌어내고 문제의 본질과 자초지종을 논리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지성이기를 바란다. 헤아림의 미덕과 함께 빛나는 지성을 갖춘 우리 젊은이들이 미래의 상생 사회를 열어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