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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81 호 [사설] 백년을 위한 제언

  • 작성일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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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909
이해람

올해도 수능 한파 속에서 2020학년도 대학입학 수학능력고사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입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미 다양한 수시전형이 진행 중이며,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와 적성에 맞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대학 역시 교육이념, 인재상, 학과 특성에 가장 부합하는 우수한 학생의 선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과 학교의 건강한 노력과 달리, 최근 입학전형과 관련된 몇몇 사건들은 많은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심어주었다. 대학 입학전형 방식은 물론 고등학교 교육정책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입학 제도의 첫 번째 특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크게는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으로 나뉘며, 각 전형 내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전형, 논술전형, 실기전형 등 다양한 전형이 존재하여, 각 전형별 취지, 기준, 배점 등은 천차만별이다. 입시를 담당하는 전문가들도 각 전형의 특징을 속속 들이까지는 알지 못할 정도라 한다. 대학입시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지나치게 잦은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도 우리나라 대학입학 제도의 특징이다. 최근의 분석에 의하면, 광복 이후 대학입학 선발 방법은 총 18번 변경되었는데, 이는 매 4년마다 대학입학 전형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입학 전형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교육 당국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다소 과도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정부의 재정 지원과 연계된 대학평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시 관련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중에서도 대학입학 전형 방식의 잦은 변화는 수험생과 학부모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우선 대학입학 전형 방식의 변화는 대학은 물론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선을 심어줄 수 있다. 최근의 특수목적 고등학교와 자립형 고등학교의 폐지 발표를 보면,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고등학교 교사들이 경험하게 될 혼란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제도는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제도는 단점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논의되는 새로운 제도의 변경이 미래에 긍정적 결과만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향후의 대학입학 전형의 방법 및 기준에 대한 논의는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이 지켜지기를 기대해 본다. 먼저, 새로운 정책의 도입에 앞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러 대안들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그 분석 내용들이 가감 없이 투명하게 토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교육 현장의 경험과 우려에도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여 입시의 자율성을 대학에 보장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으며, 지역적, 환경적 여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학에게 일률적 기준과 통일된 지침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대학에게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학생이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자율적으로 선발할 권한을 부여하되, 교육 당국은 대학의 선발 과정에서의 불공정, 부정, 비리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지 않고 철저한 조사와 함께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정책이 채택되더라도 백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 십 년 동안 만큼은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여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로 하여금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대학입학 준비를 할 수 있는 안정감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육 정책이나 입시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적 또는 단기적인 처방은 또 다른 문제와 이슈를 나을 수 있다. 이번 대학입학 정책의 변화에서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근간으로 미래의 세대를 위한 백년의 계획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