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0 호 너도 나도 친환경, 그린워싱
최근 국내 유명 패션 브랜드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그린워싱’에 대한 지적을 받아 문제가 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아이티엑스코리아(자라)·이랜드월드(미쏘·스파오)·무신사(무신사 스탠다드)·신성통상(탑텐)을 경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친환경적인 공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자사 제품 상품명이나 설명란에 '에코', '친환경 소재', '지속가능한' 등 친환경적인 표현을 사용해 광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브랜드의 그린워싱
앞서 언급한 패션 브랜드의 사례 외에도 그린워싱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포스코의 친환경 철강 제품에 대한 광고 행위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포스코의 친환경 브랜드 ‘그리닛’ 제품 중 하나가 홍보와는 달리 실제로는 친환경성의 비율이 낮다는 말이다.
이처럼 그린워싱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친환경 제품의 선호도 증가로 이를 악이용한 기업이 과대•과장하여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린워싱’이란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고 있을까?
‘그린워싱’의 정의와 문제점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란 실제로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캐나다의 친환경컨설팅 기업인 테라초이스는 그린워싱의 대표적인 7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기업은 ‘상충 효과 감추기’를 통해 친환경적인 효과를 강조하면서 다른 분야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감추고, ‘유해한 것의 정당화’로 다른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유해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유해한 제품을 정당화한다. 또한 ‘허위 라벨 부착’으로 소비자를 속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기업은 증거 불충분, 애매모호한 주장, 관련성 없는 주장, 거짓말 등의 그린워싱 수법을 통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구축하여 소비자에게 자사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는다.
이처럼 그린워싱은 친환경적이지 않은 제품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여 소비자를 기만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는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저하시키며 시장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등의 문제를 불러오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다.
너도 나도 친환경, 국내외 그린워싱 사례
▲국내 그린워싱 적발건수 (사진: 환경부 https://www.me.go.kr/ )
환경과 사회 공헌, 기업의 지배구조가 강조되는 ESG 경영이 화두인 가운데, 환경과 가치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린워싱’이 논란이 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57건, 2021년 272건에 불과했던 국내 그린워싱 사례는 2023년 4,940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적발된 기업 수도 45개에서 1,822곳으로 늘었다. 그렇다면 국내외에서는 어떤 ‘그린워싱’이 이뤄지고 있을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린워싱 사례 중 하나는 코카콜라의 플라스틱병이다. 코카콜라는 매년 약 1,200억 개의 플라스틱병을 생산하고 있다. ESG 경영을 표방하며 다양한 친환경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2025년까지 포장재를 100% 재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지만, 그 성과는 저조하다. 영국 가디언은 코카콜라는 2000년 이후 플라스틱 생산량이 두 배로 증가했지만, 재활용 비율은 9%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하기도 했다.
애플 역시 그린워싱 비판을 받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다. 애플은 친환경 기업을 자처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자주 제품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2020년 출시된 아이폰12 시리즈부터는 충전 어댑터와 유선 이어폰 제공을 중단하며, 쓰레기 감소와 함께 제품 포장 무게·부피 축소를 통한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제조 및 운송 비용 절감 효과를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이며,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LG전자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1,200여 개 제품 판매장에 배포한 안내 책자 및 제품 부착 스티커 등을 통해 ‘HS 마크 획득, 미 FDA(식품의약국) 인증·친환경 김치통’이라고 광고했다가,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환경 친화적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국내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2021년 ‘종이병’ 한정판 제품을 출시했다. 용기 외부에는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난 종이병이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시도로 홍보됐지만, 실제로는 종이 외피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 있었고, 이 점은 소비자들의 비판을 불러왔다. 이니스프리 측은 “기존 제품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절반가량 줄였다”고 해명하며, “용기 전체가 종이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사과했다.
▲종이로 된 병을 뜯으니 감춰진 플라스틱 용기가 나오는 모습. (사진: 헤럴드뉴스 https://www.newsverse.kr )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에서 적발된 그린워싱 사례는 총 4,940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 중 99.8%인 4,931건은 법적 강제력이나 불이익이 없는 ‘행정지도’에 그쳤고, 실제로 시정명령이 내려진 사례는 단 9건뿐이었다. 시정명령을 받은 기업은 해당 표시·광고를 즉시 중단하고, 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한 달 이내에 이행 결과서를 환경부에 제출해야 한다.
환경부의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 제15조에 따르면, 제품에 재활용 물질이 함유되었음을 광고하면서도 그 성분의 양이나 비율을 명시하지 않아, 마치 제품 전체가 친환경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행위는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한다. 제품 광고는 제재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기업 이미지 광고 등 간접적인 형태로 이뤄지는 그린워싱은 기준이 모호해 제재를 피해가기 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의 환경경영 목표에는 기간별 또는 단계별 세부 계획이 포함돼야 하며, 이를 이행하기 위한 인력과 자원을 확보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그린워싱’ 인식,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https://www.korcham.net/nCham/Service/Main/appl/Main.asp )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기업의 인식 전환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기업은 자사 제품이나 브랜드와 관련된 환경 주장이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중 43%는 그린워싱의 기준조차 모른다고 응답했다. 기업은 외부에 공개하는 자료 중 어떤 표현이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해당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23일, 정부는 녹색경제활동 적합성과 ‘그린워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올해 안에 녹색금융 전문인력 2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기관 내에 전문 인력이 배치되면, 친환경 기준을 보다 정밀하게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되어 실효성 있는 규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친환경과 환경 보호를 고려한 ‘가치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단지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위한 그린워싱이 아닌, 진정성 있는 친환경 제품과 마케팅이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이은탁 기자, 박찬웅 수습기자